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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맨_칼럼_천리안을 끊으며 신문의 운명을 생각하다_20140517

가끔 인터넷뱅킹으로 통장 입출금 내역을 조회하다가 천리안 사용명목으로 매월 6500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  그때마다 천리안 서비스를 끊고 6500원을 아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6500원쯤이야’하면서 천리안서비스 중단을 실행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
LG유플러스의 천리안 서비스는 199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PC통신망 서비스였다. 현재 천리안의 PC통신서비스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인터넷 형태로 몇몇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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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에 처음 가입한 때는 지난 1991년 7월이다. 군을 제대하면서 받은 재형저축통장을 털어 386컴퓨터를 모뎀과 함께 구입하고, 곧바로 하이텔과  천리안에 가입했다.  새로운 정보, 새로운 친구, 잘 정리된 데이터베이스가 가득한 천리안은 신세계였다.
기자에 입문한뒤 천리안은 최고의 취재 도구였다. 취재아이템을 게시판이나 동호회에서 찾았고, 정보기관이나 보유하고 있음직한 취재원 정보를 인물정보데이터베이스에서 단 몇 초만에 구해 취재에 활용했다.
하지만  1997년  전화선보다 한단계 위인 ISDN을 사용하면서 천리안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천리안은 가입자들에게 전화선을 통해 PC통신과 인터넷에 접속하는 서비스와 PC통신 내부 각종 서비스와 데이터베이스 이용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인터넷 시대가 열리자 굳이 천리안을 이용할 필요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사용료를 내면서 천리안 서비스를 굳이 끊지 않았던 것은 천리안 ID(penman)에 대한 애착때문이었다. 사이버세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정했던  ‘penman’이라는 ID는 사이버세계에서 내 이름 역할을 했고, 그후 인터넷시대에서도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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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6500원을 2014년 5월까지 꼬박꼬박 냈으니, 23년동안 인터넷 뿌리를 유지하는데 170여만원을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입출금 통장내역을 보면서, ‘이번에는’하면서 천리안 서비스를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작은 돈이라도 돈을 헛되이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인터넷시대에 별다른 서비스 혁신없이 돈을 꼬박꼬박 받아가는 천리안에 대해 서운함 느낌도 들었다.
천리안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천리안 중단 안내를 받았다. 고객상담원은 “무료 서비스로 전환하면 6500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했다. 그 상담원은 이어 “메일 용량이 20메가바이트밖에 되지 않아 용량이 찰 경우 이메일을 못 받을 수 있고, MS 아웃룩 서비스도 안된다”면서 “아예 ID를 끊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상담원의 반(反) 협박성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천리안 유료서비스를 끊고, 무료서비스를 선택했다.  천리안 ID를 유지하면서 6500원을 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천리안은 PC통신 시절 수백만 유료가입자를 모으면서 한국 최고의 미래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런 기업의 초창기회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서비스를 이용할 때 만들었던 이름을 부모님이 주신 이름처럼 23년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다.
천리안을 운영하는 LG유플러스에 문의한 결과, 수천명 수준의 가입자들이 6500원을 내고 있다고 한다. 주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산간 벽지 지역 거주자라고 한다. 세상의 변화를 제 때 타지 못한 천리안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주소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업계가 앞으로 10년 뒤, 천리안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하니 연민의 정보다 머리카락이 서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국 신문사들은 현재 작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백여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제값을 내는 구독자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일부 신문은 거의 공짜로 뿌리면서 가입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유료 신문 구독자수가 줄어드는 근본 원인은 천리안이 인터넷 시대에 돈을 낼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유사하다. 신문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을 PC와 스마트폰에서 얼마든지 이용할수 있으니 굳이 돈내면서 까지 신문을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무료를 이긴 유료 서비스는 거의 없다. 산업 시대 탄탄했던 모든 유료 서비스들은 인터넷의 무료 서비스에 처참하게 무너졌고, 그나마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유료서비스들도 운명을 다해가고 있다. 신문산업이 그러하다.
신문산업이 천리안의 운명에 이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디지털시대에 맞게 바꾸는 수밖에 없다. 기자 채용제도에서부터 기사작성도구, 출판플랫폼, 콘텐츠개념, 수익모델, 독자개념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최근 화제를 모은 뉴욕타임스 내부 혁신팀의 보고서는 운명을 다해가고 있는 신문산업 내부의 민낯이며 또한 변신을 위한 절규이기도 하다.
우병현 기자 pen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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