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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맨_칼럼_월드와이드웹의아버지가한국에온다_20140130

[월드와이드웹의 미래] 한국 인터넷 상용화 20년, 명료한 비전을 찾자  
▲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penman@chosun.com
1994년 6월 20일 PC에 전화선을 연결하고 [a][b]모뎀으로 한국통신의 코넷(Kornet)에 전화를 걸자, ‘삐~’소리와 함께 고퍼(Gopher) 화면이 모니터에 떴다. 이어서 인터넷 옐로북에서 하버드대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주소를 찾아서 네트워크에 접속한 뒤, 필요한 책 제목을 입력하자 책 목록이 모니터에 표시됐다.
오는 6월 20일은  한국에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지 만 20년이 되는 날이다. 1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소 전길남 박사가 서울대와 연구소 사이에 한국 최초의 인터넷 SDN를 처음 구축한 이래 12년만에 인터넷이 대중에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1994년 한국통신은 PC와 전화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같은 해 데이콤과  전 박사의 제자인 허진호씨가 세운 아이네트가 인터넷 상용화 서비스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한국 인터넷 대중화의 길을 활짝 열었다.
한국 사회는 20년에 걸친 인터넷 대중화 과정에서 눈부신 성과를 일궜다. 전국 어디에서나 최고 수준의 유무선 인터넷을 즐길 수 있고, 한국인이 만든 스마트폰은 무선 인터넷 시대를 맞은 지구촌 최고 인기 품목이다.
이런 성과를 일궈 낸 데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한국사회 리더들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를 제시하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정보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인터넷 상용화 20년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기존 정보화 전략을 반성하고,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오랫동안 한국식 정보화의 성공에 안주하면서 세계 인터넷 흐름과 멀어지면서 세계 인터넷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은 정치, 지역, 이념, 세대간 대결 마당으로서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널리 알려진대로 인터넷 태동기 한국의 정보화는 정부주도형이었다. 특히 정부주도형 정보화는 초고속인터넷망을 전국에 촘촘히 까는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이 완료된 이후에는 정부가 새로운 분야를 찾지 못한 채, 어설픈 국산화와 복잡한 규제장치 마련에 몰입하면서 시장과 점점 멀어졌고, 세계 인터넷의 주류와도 멀어졌다.
또 이명박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해체함으로써 정보화 컨트롤타워 마저 사라지자, 각 부처가 영역 다툼을 하느라 5년을 허비했다. 아울러 시장은 세계 주류 흐름을 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박근혜정부가 등장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이전 정보화전략 수립 기능을 일부 복원했다. 하지만 현 정부도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개념의 볼모가 되어 창조경제를 정의하는데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
한국이 초기정보화 성공에 한 뒤,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이 인터넷의 본고장인 미국은 인터넷을 바탕으로 더 높이 비상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배워간 중국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인터넷 중심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한국의 정보화에 한창 뒤처졌던 일본마저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다.
인터넷상용화 20년을 계기로 정책분야를 비롯해, 산업계, 학계,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정보화 이후 정보화 과제를 필사적으로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제는 정보화 과제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맞이한 거대한 변화가 불과 20년 동안 이뤄진 것이라는 점과, 한국의 시장 크기를 감안하면 시장과 국민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정보화는 앞서가자’와 같은 간단 명료한 전략을 여전히 필요로 한다.
마침 인터넷 분야 세계적 학술대회인 월드와이드웹 콘퍼런스(WWW 2014)가 오는 4월 7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 대회에는 월드와이드웹을 만든 팀 버너스-리 MIT 교수를 비롯해 인터넷 관련 세계적 권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마음을 열어 우리가 놓친 것을 찾고, 귀를 열어 해외 인터넷 전문가로부터 한국의 새로운 과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새로운 정보화 비전을 찾을 수 있다. 인터넷 강국으로서 한국인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세계 인터넷 전문가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정보화의 최우선 과제는 정보화 이후 정보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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